북대서양조약기구 군사위원회 의장 롭 바우어(Rob Bauer) 네덜란드 해군 대장/북대서양조약기구 군사위원회

약1년 전 이맘때 나는 브뤼셀에 위치한 나토 본부의 내 사무실에 서서 걸어 놓은지 몇 달 된 우크라이나 지도를 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침공이 시작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될 것임을. 짧은 밤이 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두를 일찍 귀가시켰다.

나는 4시 15분에 전화를 받았고, 6시 30분에 본부에 도착했다. 8시 반에는 북대서양 이사회(North Atlantic Council) 회의가 소집되어 침공과 관련된 최초의 내용들이 논의되었다.

회의실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침공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몇 달간 전례 없는 규모로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던 덕에 나토의 상황 파악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했다. 짙은 당혹감은 단 하룻밤 사이에 세계사의 흐름이 뒤바뀐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지각변동이었다. 유럽 대륙에 전쟁이 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불과 침공 몇 주 전만 해도, 우리는 역사적인 나토-러시아 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와 자리를 마주했었다. 러시아 대표단은 준비가 안 돼있었고 표현 사용에 있어서도 중구난방이었다. 러시아의 발언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나토 동맹국들은 그저 놀라며 차분히 반박할 따름이었다.

2022년 4월 바우어 대장이 불가리아에서 열린 나토 합동 군사 전술 훈련에 참석하고 있다. AFP/Getty Images

우리를 놀라게 한 발언 중 하나는 러시아는 유고슬라비아 해체가 나토 탓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러자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측 인사들이 차례차례 마이크를 잡고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22년] 2월 24일까지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외교가 수행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물밑 노력이 진행되고 있을 때, 놀랍기 그지없는 모든 첩보 보고서를 러시아측이 부정하고 있던 그 시각, 러시아의 첫 번째 탱크 군단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가로질렀다.

T-72와 T-90 탱크의 궤적은 지난 70년간 우리가 함께 구축해온 분쟁 해결 메커니즘과 국제 외교를 한번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곧 이 탱크들은 무자비한 포탄과 미사일 공격으로 주권 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전례 없는 대혼란에 빠트렸다.

러시아의 침공은 집단 방어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토 동맹 전체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해당되는 말이다.

러시아 탱크의 진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멀리 일본과 호주까지 전달되고 있다. 냉전 이후 20년 동안 나토 동맹국들은 러시아와 균형 잡힌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러시아는 1994년 나토가 ‘평화를 위한 파트너’로 선정한 최초의 국가였다. 그러나 2008년 조지아 전쟁 이후 러시아는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제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납치해 소위 재교육 캠프라는 수용소에 가두고 학대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나토 군사 당국은 러시아의 공격 패턴을 면밀히 주시해 왔고, 이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고자 나토 영토의 집단 방어를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이러한 전략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위기 관리와 집단 방어의 근본적인 차이는 시기를 결정하는 쪽이 우리가 아닌 적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분쟁에 개입할 시기와 장소 또는 개입 정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언젠가는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에 대비해야 할 뿐이며, 우리에게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양자택일 문제만 있을 뿐이다. 그러자면 승자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전쟁에는 2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한 바우어 대장(오른쪽)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동하고 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집단 방어가 가능하려면 병력 차원을 뛰어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수다. 평화를 지킨다는 것은 곧 전쟁에 대비한다는 뜻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는 심지어 전쟁 중일 때보다 평시에 작전상이든 정신적으로든 준비를 더 단단히 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평시에야말로 힘을 기르고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지금 절대적으로 부족한 두 가지 요소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는 최고의 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자국 군대와 함께 우크라이나 국민이 보여준 회복력은 전 세계에 귀감이 되었다.
희망은 있다. 실제로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

군에 몸담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훨씬 더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다. 심지어 우리가 전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강연이 끝난 후에도 분명 나를 전쟁광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1981년 군복을 입고 [암스테르담의] 담 광장(Dam Square)을 건너 귀가하던 나에게 누군가 살인자라고 소리쳤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화재를 좋아하는 소방관이 없고 병을 좋아하는 의사가 없듯 전쟁을 좋아하는 군인도 없다.

군인과 여성은 전쟁과 폭력의 참혹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는 41년간 군에 있으면서 이를 수없이 목격했다. 동료를 잃었을 때의 그 슬픔과 절망.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어머니였으며, 누군가의 동반자였으며,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대장 2024년 4월 4일,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창설 75주년 기념식에 바우어 대장(왼쪽)과 옌스 스톨텐베르그(가운데) 당시 나토 사무총장, 미르체아 제오아너(Mircea Geoana) 나토 사무차장(앞줄 오른쪽)을 비롯한 각국 외교 장관들이 참석하고 있다. AFP/Getty Images

정신적 또는 신체적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군인으로서 삶의 목표를 추구할 수 없게 된 동료의 슬픔은 어떠한가. 네덜란드 정부의 명령으로 상대를 죽이고 그 사실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은 또 어떠한가. 전쟁은 곧 폐허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들은 전쟁을 자제하고, 가급적이면 아예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전쟁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와 스웨덴 같은 국가에서는 국민들도 전쟁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단 몇 달 만에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온 중립을 포기했다. 이는 정부가 내린 결정이 아닌, 사회 각계각층에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더 이상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가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립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네덜란드 역시 그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속해 있다. 우리의 모든 번영은 그 시스템이 보장하는 약속,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국가와 무역하고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구축하면 그 국가와는 절대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중국과 같이) 어떤 나라가 부유해지면, 그 나라가 민주화될 것이라는 가정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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