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안보 유지를 위해 장병들에게 적절한 기술을 제공하는 일은 미국과 그 동맹 및 파트너들에게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군은 신흥 위협 요인보다 앞서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과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민간 시장에 비해 느린 조달 체계와 예산 제약이라는 한계 속에서 이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8월, 캐슬린 힉스(Kathleen Hicks) 당시 미 국방부 부장관은 ‘리플리케이터(Replicator)’ 구상을 발표했다. 이 구상은 민간 부문의 역량을 활용해 신기술의 개발 및 전장 배치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국방부의 전략적 노력이다. 국방부는 통합 전략의 일환으로 혁신 기술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이나 무인시스템처럼 몇 주 만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혁신적 도구를 활용한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함이나 대형 무기 체계 구매 시처럼 수 년씩 소요되던 기존 방식보다 더 민첩한 조달 체계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미 국방부는 ‘리플리케이터’ 구상으로 기술 개발과 조달 속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리플리케이터는 단독 운영 프로그램이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의 예산, 기획 및 권한을 활용한다. 힉스 부장관은 리플리케이터 구상을 주도하기 위해 합참차장과 공동 의장을 맡는 ‘부장관 직속 혁신조정그룹(Deputy’s Innovation Steering Group)’을 신설했다. 이 조정그룹은 국방부 산하 국방혁신단(DIU)과 협력해 현업 및 국제 파트너들과의 공조를 통해 구상의 목표 달성을 추진한다. 이 절차는 기존 국방부 조달 방식과 병행하되 더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설계되었으며, 2024·2025 회계연도에 약 1조 4,247억 원(10억 미국 달러)의 초기 예산이 책정되었다. 리플리케이터 구상 발표 당시 힉스 부장관은 “이러한 노력들이 어우러져” 위성 통신, 감시 체계, 전파방해차단 무선링크와 같은 “전투병력 우선 과제의 전환 및 전력화 소요 기간이 3~6년 단축되고 있다”면서 “미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혁신 잠재력을 발휘하고 실현하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플리케이터 구상의 직접적인 계기는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빠른 무기 증강 속도다. 2023년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장거리 정밀타격무기, 통합 방공 체계, 극초음속 무기, 생화학무기, 핵 역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완전한 군 현대화와 ‘세계 수준의 군대’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올로 보보(PAOLO BOVO)/미국 육군
2023년 9월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힉스 부장관은 “중국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수십 년간 유지해온 작전상 우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현대적 군사력을 구축해왔다” 고 발언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리플리케이터 구상 1단계는 2025년 8월까지 첫 통합 시스템을 전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힉스 부장관은 리플리케이터 1단계가 ‘더 많은 함정, 더 많은 미사일, 더 많은 병력’을 앞세워 규모로 밀어붙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의지가 강한 방어자가 덩치 큰 침략자의 목표 달성을 저지할 수 있도록 돕고, 위험에 노출되는 병력의 규모를 줄이며, 전투병력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 신속하게 생산, 배치,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면서도, 장기간의 정비 부담 없이 운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전력의 예로는 자율 항해 선박과 무인 항공기를 들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잠재적 경쟁국보다 대비, 타격 및 제압이 어려운 시스템을 확장시켜야 할 시점”이라고 힉스 부장관은 덧붙였다.
마이크 브라운(Mike Brown) 전 국방혁신단 국장은 2023년 11월 국방부 뉴스를 다루는 팟캐스트 핫워시(Hot Wash)에서 “1950년대까지만 해도 국방부는 필요한 기술의 대부분을 민간 부문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며, “예전에는 국방부가 필요한 기술을 직접 개발하던 시대였지만, 이제는 민간이 개발한 기술을 국방부가 구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국방부가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 사이버 도구, 드론과 같은 핵심 기술의 대부분이 민간, 심지어는 소비자 시장에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기존의 프로그램 중심 접근이 아닌 역량 중심의 새로운 조달 방식이 요구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힉스 부장관은 리플리케이터 구상이 기술 변화뿐 아니라 조직 문화의 변화도 함께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3년 9월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디펜스 뉴스 컨퍼런스(Defense News Conference)에서 힉스 부장관은 “‘리플리케이션’이 단순히 생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향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적절한 목표 달성 방식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 목표 달성 방식 자체를 반복(replicate)하고 체화하는 것 또한 리플리케이션의 목표”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춰
군이 전장에서 무인시스템을 활용한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오스트리아는 1849년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중 베네치아를 공격하기 위해 수백 개의 ‘풍선 폭탄’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또한 해당 기술을 미국을 상대로 사용했지만, 두 사례 모두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15년, 영국군은 독일 전선 지도 제작을 위해 단발 복엽기에 카메라를 장착해 항공 사진을 촬영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미국에서는 무인 항공 어뢰가 개발됐지만, 실전에 투입된 적은 없다. 1930년대에는 영국과 미국이 표적 훈련용으로 소형 무선조종 항공기를 제작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드론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1936년이다.

정찰용 무인 항공기(UAV)는 베트남 전쟁 중 대규모로 투입되었으며, 이후 미사일 발사, 심리전 전단 살포, 유인 전력 교란용 미끼 역할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 년간 기술의 발전으로 드론이 더 높이, 더 멀리 비행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러한 시스템의 활용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기존의 정부 조달 절차는 빠르게 기술을 개발하는 소규모 민간 기업에게는 진입이 어려운 구조일 뿐만 아니라, 실제 실행까지는 수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일부 아이디어는 기획이나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국방부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기술은 현장에 배치되기도 전에 이미 구식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해병대 항공 조종사이자 국방혁신단의 블루 UAS(Blue UAS) 프로그램 관리자를 맡고 있는 트렌트 에메네커(Trent Emeneker)는 내셔널 디펜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전장에서 소프트웨어의 수명은 약 2주에 불과하다”며, 국방혁신단은 약 90일
만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승인을 받기도 하지만, 국방부의 전통적인 승인 절차는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의 팀은 소프트웨어 배포를 96시간 이내에 검토 및 승인받을 수 있도록, 보다 민간 부문에 가까운 속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6시간도 아직 우리가 원하는 속도보다는 느리다.” 에메네커는 국방혁신단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승인 시간을 30초까지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만 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국방부가 필요한 기술을 직접 개발하던 시대였지만, 이제는 민간이 개발한 기술을 국방부가 구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국방부가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 사이버 도구, 드론과 같은 핵심 기술의 대부분이 민간, 심지어는 소비자 시장에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 마이크 브라운, 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혁신단 국장
우크라이나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힘의 균형을 바꿔보고자 전례없는 규모로 무인 시스템을 현장 배치하고 있으며, 미국과 그 동맹국 및 파트너들은 지금도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무인 항공기를 자국 군 조직에 통합시켰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기업들로부터 수천 대의 드론을 확보했으며, 민간인이 상업용 드론을 자택에서 개조해 정찰 및 공격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전략적으로 잘 운용된 드론 한 대는 자산을 파괴할 수도 있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거의 모든 전투 여단이 공격용 드론 부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부대가 소형 정찰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사실상 해군 전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드론 보트와 미사일을 끊임없이 활용해 러시아 해군을 흑해에서 몰아냈으며, 30척 이상의 러시아 해군 함정을 파괴하거나 손상을 입혀 결국 러시아 해군을 점령 중이던 크림반도에서 철수하게 만들었다.
2024년 9월, 우크라이나는 국산 장거리 무인 항공기를 활용해 이번 전쟁 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효과적이었던 드론 공격 중 하나를 감행했다. 이번 공격은 러시아 본토 안쪽 깊은 곳에 위치한 무기고에 지진 관측소에서 감지될 정도의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번 공격으로 이스칸데르(Iskander)와 토치카(Tochka) 미사일, 그리고 북한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들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적군 추적, 포병 사격 유도, 목표물 폭격에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드론 외에도 원격 조종 1인칭 시점(FPV) 무인기를 운용하고 있어, 조종사가 헤드셋이나 고글을 통해 기체의 시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폭발물을 장착해 목표물에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FPV 드론은 크기, 배터리, 탑재 중량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가격은 71만 원(500 미국 달러) 정도로 낮은 편이며, 최대 사거리는 20킬로미터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가 이처럼 빠르고 민첩하게 무인기 전력을 구축해온 모습은 나토 군 지휘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정밀함과 물량공세가 양자택일의 문제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마이클 C. 호로위츠(Michael C.
Horowitz) 당시 미 국방부 전력 개발 및 신흥 전력 담당 부차관보는 2024년 1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화상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며, “많은 경우 정밀한 물량 공세가 필요해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2023년 10월, 국방혁신단과 나토 파트너들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정부 산하 국방기술 조직 브레이브1(Brave1)과 만나,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의 협력을 통해 신기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선에 전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포럼에는 업계, 투자자, 정부 및 비영리단체를 대표하는 유럽, 우크라이나, 미국 관계자들이 200여 명 이상 참석했다.
브레이브1의 국제 협력과 파트너십을 총괄하던 세르히이 코쉬만(Sergiy Koshman)은 바르샤바 포럼에서 “작전상의 필요를 충족하고 혁신의 최전선에 머무르려면, 유연한 소통 방식을 채택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파트너들 간의 조율을 확실히 하는 것이 필수”라면서 “이번 모임은 우리가 무인항공 체계 요구사항의 중요 사안을 다루기 위해 얼마나 신속하고 유연하며 효율적인 소통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건설적이면서도 기민한 접근을 보여준 우리 국방혁신단 파트너들에 감사드린다. 브레이브1은 앞으로도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해 나가길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성명에 따르면, 힉스 차관의 첫 발표가 있은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2024년 5월, 리플리케이터 구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자율 시스템을 실전 배치했다. 리플리케이터 프로그램의 1차 배치에는 1,000기가 넘는 스위치블레이드(Switchblade) 드론과 수량이 공개되지 않은 해상 드론 및 무인 수상 차량이 포함됐다. 2024년 9월, 미국 국방부는 ‘리플리케이터 2’를 발표했다. 당시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Lloyd Austin)은 이번 단계가 드론 대응 기술, 특히 “주요 시설 및 병력 밀집 지역”을 보호하는 시스템과 같은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메모에서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같은 메모에서, 미군이 2026회계연도 예산안에 리플리케이터 2 관련 예산을 포함할 예정이며, 예산 승인 후 24개월 이내에 시스템이 배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드론 대응 역량의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을 발굴· 확산하기 위해 각 군과 협력할 계획이다. 더그 부시(Doug Bush) 전 육군 조달 책임자는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육군이 단순히 물체를 탐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활용해 대응 방식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드론 대응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건 일종의 세 단계로 구성된 과제”라며, “먼저 드론을 탐지해야 하고, 그다음엔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허가가 떨어졌을 경우 실제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어떻게 대응할지를 판단하고, 그 과정에 데이터를 반영하는 중간 단계야말로 향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